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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았다. 너무나 도발적인 제목과 책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그후로 한 해가 지나고 지금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번책은 카페에서 커피한잔과 곁들일 정도로 부드럽게 썼다고 하지만 책에 내용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구조적 여성차별을 통해 한국의 남자들이 어떤 잠재적 수혜를 받고 살아왔는지 짚어가는 것부터 책은 시작한다.  

 

첫차를 타면 가끔 '오늘 하루만' 성실한 몇몇을 말한다.(중략) 여행 가는 사람들은 첫차의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여행용 가방을 끌면서 멋쩍어한다. 일용직 노동자가 분명해 보이는 사람이 땅바닥에 던녀 놓은 큼직하고 먼지 묻은 가방과 참으로 대비된다.(중략) 장담컨데 '오늘만' 성실한 이들이 '매일' 성실한 그들보다 더 부유하리라.

 

나는 이글에 문단을 보면서 '한진그룹 물컵사건'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본문중)

'이기적인' 공동체에서 '이타적' 개인이 존재할 리 없다. 결국 각자도생만이 해법이기에 '나'는 우리로 뭉치지 못하고 원자화된다. 연결되지 못한 원자들은 '약하기에' 어떻게든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최소화하는 걸 상책으로 여긴다. 그것이 의무라도 말이다. 공공선을 파괴하는 행동을 감히 절약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우리의 불안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거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는 몇개월째 노동조합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짊어져야 할 의무를 회피하거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바쁠뿐이다. 어렵게 지켜온 가치였건만 함께 만들고 지켜내지 못하는 이들이 야속하다.

 

(본문중)

한국인들은 '자심감을 가져라!', '하면 된다', '너는 절대 여기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다', '높은 곳으로 향해라!' 등의 말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최고, 최대, 최초' 라는 말에 환장하는 사회에 살아남는 일종의 주술이다. 이런 세뇌로 인해 최고, 최대, 최초가 될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도 별말 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얽매여 '무슨 경우라도 내가 잘못한거야'라면서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해괴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다.

 

오찬호 작가도 회사라는 조직에 훌륭하게 적응할 수 있기에 시작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위와 같은 얘기를 하며 적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일것이다. 30대 직장생활은 최고, 최대, 최초에 고무되어 그것만을 좇았다. 회사에서도 그걸 요구했고 구성원으로 기대에 부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 10년이 조금 넘는 사회생활이 내겐 남아있다.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이미 길들여진 나는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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