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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살면서 배워야 할 것들, 찾아봐야 하는 것들이 많이도 생겨난다. 가끔은 상대가 얘기하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만 모른게 아니라 대화에 참여한 대상 모두가 같은 경우가 다반사다. 화자의 지식 자랑과 혹시나 부족함을 보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질문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질문하자. 꼼꼼하게 물어보자. 태반이 두번에 질문을 넘어가지 못한다. 내가 알고 지식영역 언저리에 포인트가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에 모른다면 상대 말주변에 문제가 있거나 일반적인 지식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갑작스레 알고 모름에 대해 늘어놔버렸다.
시대를 바뀌어도 수학, 물리, 공학 등 기본골격은 거의 비슷하다. 기반지식을 떠나 특정 세대만 이해하는 언어습관, 유행문화 이런 것은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들도 그런 문화를 다른 세대와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만에 연대라고 할까. 다음세대는 기득권을 가진 이전세대를 부정하고 참여에서 배제함으로써 자원의 순환을 꾀한다. 세상에 동작원리가 이런걸 어쩌나. 세상 알면 알 수록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한계가 눈에 보이는 걸 어쩌나.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처럼 차라리 모르고 덤비는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알면 알 수록 난감한 것이 세상일인가.
(본문중에서)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여는 글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공부의 가치
하교수는 '오로지 공부만이 한국 사회에서 생존 확률을 확실하게 높여주는 보증수표라는 믿음이 머릿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엄기호 박사는 '삶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공부는 성장하는 삶을 위한 도구'이며, '당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헤쳐 나가는 사람의 지혜,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공부의 본디 목적이다.
동양철학은 흔히 두괄식이라 한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사항을 책 앞에 기록했다는 말이다.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았더라도 동양고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은 죄다 첫 구절이다. 그만큼 앞에 있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증거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공자는 부유하고 학식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숙량흘로 무관이었다. 전투에서 공을 세우자 안징재라는 여인을 아내로 얻었다. 숙량흘을 공자 세 살 때 죽는다. 당시는 제후, 경, 대부, 사, 평민 으로 나누어졌다.
공자는 '사'계급에 불과했으나 학문을 열심히 해 군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학문에서 학과 문을 구별해보면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학이고 그 지식을 주체적으로 소화하여 진정한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비판적인 관점에서 의문을 가지고 반문하는 것이 '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공자 제자는 3천명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과장이라는게 정설이다. 여러 자료를 보면 70명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공자의 제자는 세명의 제자 '자로', '자공', '안연'이다.
'앉은뱅이 책상 하나 그리고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기꺼이 학문과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고 꿈꾼 적이 있는데, 아인슈타인도 그러했더랬다.
'내가 지금까지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결코 시험 준비를 철저히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시험과 무관하게 공부했기에 내 나름의 능력을 기를 수 있었고, 이렇게 길러진 능력이 시험에서도 그 효과를 발휘한 것뿐이다.'
파인만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그를 무릎에 앉혀놓고 백과사전을 읽어주곤 했다. 동화책이 아니라 백과사전을 읽어중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읽어주는 방식도 남달랐다. 아버지는 늘 예를들어 설명하고 대화로 가르치려 했다. '강요나 억압은 전혀 없었고 단지 흥미롭고 사랑이 깃든 대화가 있을 뿐이었다.'
과학에서 모험가, 실험가, 발명가들이 추방되었다는 말은 가슴아프다. 거대과학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한쪽은 실적이 한쪽은 관리가 핵심어가 되는 분위기다. 거인의 목말을 타 새로운 지평을 보아야 하거늘, 잔재주나 피우는 광대만 보는 듯싶다. 참된 공부 정신을 회복해 근원을 파헤치려는 재미와 열정을 되찾는다면 가능할 거라 믿어본다.
꼭 읽어봐야 할 과학책으로 흔히 토마스 쿤의<과학혁명의 구조>를 꼽는다. '과학은 패러다임이 정립된 정상과학과 이것이 바뀌는 과학혁명을 반복하면서 발전한다'가 된다.
무엇이 이들을 모두가 동의하는 것에 맞서게 했을까? 마이클셔머<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이다.
과학에서 지식은 유동적이고, 확실성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과학을 제약하는 것이며, 또한 과학이 가진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흔히 천재적이다, 창조적이다, 혁신적이다 라는 말은 과학분야와 잘 어울린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미사어구가 가능한 정신은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앞 세대의 지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절대시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의 대상으로 삼아, 그 결과를 넘어서려는데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창조적이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그 무엇을 이뤄내려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과학은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책은 정보 전달을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정보를 찾으려면 인터넷을 보는 게 가장 빠르다.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나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뚫어준다는 점이다.' "정재승"이 말함
'아는 것만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는 것을 다룰 수 있게 될 때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그 어떤 희열이 창조적 행위를 능동적으로 했을 때보다 더 큰 것은 없는 법입니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하자는 겁니다. '읽자'를 강조하기보다 '쓰자'를 강조해보자는 거죠. 수동보다는 능동을, 수용보다는 창조에 방범을 찍자는 말입니다'라고 한바 있는 고미숙도 공부의 최종심급은 글쓰기라 강조했다.
(애면글면) (신산했다) (알레고리)
역사를 거슬러서, 또는 잘 올라타서 성공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개인이 그 도도한 역사의 물결에 맞설 수 없다. 당연히 맞서고 거스르고 잘 타는 숭고한 이들이야 있지만, 대다수는 휩쓸린다. 숭고하지 않은 삶은 그렇다면 의미 없을까? 아니다. 고상함의 자리에 가면 된다. 지난 삶을 해학과 풍자로 회고하며 남은 삶을 넉넉하게 살아가면 된다. 푸구이가 그랬다.
위하의 <인생> 루쉰의<아Q정전>
길고 긴 결론은 읽고 토론하고 쓰면 된다. 쓰기가 맨 앞에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단언하건대, 쓰려고 읽는 일이야말로 가장 미래적인 공부방법이다.
1장. 막 내린 ‘공부 전쟁’의 시대
되물림된 입시 전쟁
창의력과 상상력이 설 자리가 없다
공부 중독에 빠진 이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혁신적 공부법
2장. 옛 사람이 실천한 참된 공부의 길
먹고사는 것을 넘어 인문적 사유로
공자의 공부 철학
토론과 논쟁이 살아있는 교실
학과 문이 지적 성장을 이룬다
공자 제자의 놀라운 변신
3장. 자서전으로 배우는 공부의 가치
공부 도둑이 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의심하고 비틀어보고 질문하라
아름다운 자연이 스승이었다
공부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있던 시대
4장. 공부는 사고의 혁명이다
최종적인 정답은 없다
모른다고 선언할 때 가능성이 열린다
참된 공부의 길은 질문에서 비롯한다
5장. 이제, 의미의 소비자에서 의미의 생산자로
지능과 지성의 대결
다르게 살고 싶다면 책을 집어라
누가 읽는가?
의미의 창조자가 되는 길
6장. 다시 던지는 질문, 왜 공부해야 하는가
쓸모없음의 쓸모
되새겨보는 입신양명의 참뜻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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