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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에 참고를 위해 요약을 했다. 방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으니까 관점이 조금은 달라진다.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들이 시간순으로 정리되어 있다보니 모두 읽게 된다. 교토에 입간판 설명이 어떤 언어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에 이해를 돕기 위해 꼼꼼하게 살펴봤다.
(본문요약)
일본 국보 제1호, 광륭사 '목조미륵반가상' 국내에서 넘어간 것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제작되었는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 '저런 묘수를 발견하려면 타고나던가 훈련을 잘 받든가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일제치하에 보물을 일괄로 국보지정을 했다. 그 순서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순이다. 같은 장르 안에서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순으로 매겼다. 위대한 도랭인 후손 진하승. 봉강사와 진사는 따로 있었으나 794년 천도 때 합쳐지면서 오늘날 광륭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타씨는 누구인가
한반도에서 궁월군(융통왕)이 120현의 인민들과 함께 도래했다. 교토의 진씨(하타씨)는 신라계로 추정된다.
헤비즈카라는 뱀무덤은 하타씨 지도자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무라 젠자이 집(단팥죽속에 살짝 구운 찹쌀떡을 넣은 것이 일품이다.) 8세기말에 중앙정부에서 일정한 정치적 자격을 갖춘 가문을 셋으로 나누어 천황의 자손을 칭하는 황별, 신의 자손을 칭하는 신별, 대륙에서 건너온 제번으로 분류했다. 마쓰오신사에 어신주는 한병에 600엔이다. 술맛이 맑고 달콤하다. 마쓰오신사에 특산품이다.
1895년 헤이안쿄 1100주년을 기념해서 옛 왕궁의 정청인 조당원과 정문인 응천문 복원해 지은 곳이다. 예산이 부족해 80%만 복원했다고 한다. 지다이마쓰리 : 교토3대 마쓰리의 하나로 가두퍼레이드다. 가모신사, 기온의 야사카 신사 : 고구려 도래인이 세운곳이다. 일본 3대 마쓰리며 교토의 상징이다. 장장 1개월에 걸쳐 열린다. 백제계가 머문 곳에 아스카라는 이름이 고구려계가 정착한 안식처는 야사카라는 이름이 생겼다. 고구려 도래인의 법관사 오중탑(전국시대에 교토를 차지하는 군사들이 제일먼저 탑위에 깃발을 꽃아 교토를 지배했다) 기온의 랜드마크 야사카 신사. 옛 왕궁의 금원, 신천원. 이조성(니조조)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음. 헤이안 천도는 간무 천황이 결정했다. 간무천황은 동생의 원령이 우글거리는 나가오카쿄의 수도 건설을 중단하고 교토의 새 수도를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794년 헤이안쿄로 천도했다. 기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하나미코지'라 불리는 유곽거리다.
어찌됐든, 기온은 사랑스럽구나, 고이 잠들 때도, 베개 밑으로, 물이 흐르다니.
동쪽 : 야사카 신사-고구려계 도래인(야사카노즈쿠리), 서쪽 : 마쓰오 신사-신라계 도래인(하타씨), 후시미 이나리 신사-신라계 도래인(하타씨), 상하가모 신사-열도 내 도래인 가모씨
야쓰오신사(술의신), 야사카신사(원령의진혼), 후시미 이나리(사업번창)
일본의 역사는 정권이 변해도 천황은 건들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거성을 무너뜨렸다.
간무 천황은 헤잉안쿄 도성 안에는 호족들의 씨사를 전혀 두지 못하게 하고 오직 관사로 동사와 서사 둘만 세우고 이를 호국의 상징으로 삼았다. 동사의 또다른 이름이 교왕호국사이다. 이처럼 동사는 그 위상이 대단했다.
공해와 최징의 당나라 유학, 제자문제로 사이가 틀어짐, 동사를 진언종 사찰로(공해) 동사가 준공된 것은 사후 50년이다.
인도 승려 금강지>불공>여섯제자(혜초, 혜과)>혜과>공해
부동명왕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부동명왕, 왼쪽 머릿단 애교스럼, 이를 공해스탕일 이라 부른다. 왜 무섭게 생겼나, 일본에 원령이란 관념이 ㅇ있는 것과 통한다.
통일신라때는 발해를 거쳐 낙양에 들어갈지언정 통일신라의 신세를 지지 않았다.
합전하는 승병들
1. 먼저 싸움 날짜와 장소를 정한다.
2. 양군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대표자가 명단을 제출하고 선전포고를 한다.
3. 싸움에 앞서 각기 소리나는 화살을 쏘면서 기세를 올린다.
4. 양군에서 함성을 지른다. 장군은 '에이에이', 군사들은 '오~'라고 외친다.
5. 활싸움은 마상에서 과녁 맞히기로 한다.
6. 양군이 뒤섞여 싸운다.
7. 승자는 군사를 정비하고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교토 사찰의 상징, 청수사
청수사를 봐야 교토를 봤다고 할 수 있다.(기요미즈데라) 청수사는 특히 석양이 아름답다.
청수사를 창건한 사카노우에 장군. 그는 백제계에 후손이다. 십일면관음보살상 : 청수사를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영험함이다. 지금의 청수사는 에도시대인 1633년에 재건된 것이다. 1868년 메이지 정부의 폐불훼석 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청수사 부지중 90퍼센트가 몰수되어 지금의 모습만 남게 되었다. 개산당의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 초상조각. 도래인 후손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다. 성취원 : 청수의 무대 왼편에 자리잡은 예쁜정원이다. 오토와 폭포에서 올려다본 청수의 무대 : 나무기둥들이 못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 28부중상은 삼십삼간당의 1천 관음상에 비해서 규모가 작지만 일본 불상조각사에서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오토와 폭포 : 가느다란 물줄기 셋이 연못으로 떨어진다. 세 물줄기는 지혜, 연애, 장수를 뜻한다. 그중 두개만 마셔야 한다. 세개를 마시면 불운해진다고 한다. 인파로 북적이는 기요미즈 자카(시조-가와라마치나 기온 거리보다 여기가 훨씬 볼거리가 많고 물건 값도 싸며 재미있다) 기요미즈 자카는 인사동같이 변질되지 않고 옛 전통 상가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지강변 : 차로 유명한 우지는 교토의 동남쪽 후시미 아래에 있는 아담한 전원도시다. 평등원은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1053년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사찰로 개조하면서 극락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헤이안시대 400년중 200년간을 후지와라 시대라고 한다. 우리로 말하면 외척이다.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에 시 "천하가 모두 나의 것이니 저 둥근 달처럼 모자람이 없어라"
말법사상은 참회와 염불이라는 실천적인 신앙생활에 임하라는 것이다. 연력사의 원신 스님은 '왕생요집'을 저술해서 말법사상을 전파했는데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왕생요집'을 애독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등원이 탄생했다.
봉황당의 야경, 하이라이트는 중당의 속지붕 가운데를 살짝 들어올려 격자무늬 창으로 개방하고 그 안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상이 밖으로 은은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봉상관은 내가 이제까지 일본에서 본 사찰 전시관중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건물이다. 평등원의 아름다움에 답하는 21세기 건축물이라 하겠다.
평등원 범종 : 평등원의 범종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꼽히는데 고려시대 우리 범종과 비교할 만한 점이 많다. 이종에 특징은 한국종의 영향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옮기면 불경이 되고,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하면 불상이 된다. 부처님의 목소리를 옮겨놓으면 종소리이니라.”
무라사키 시카부 : 우지강변에는 ‘겐지 이야기’의 여류작가 무라사키 시카부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937년)
국풍문화 : 문화적 자신감, 학문의 신, 천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이미 몰락해가는 당나라에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며 폐지를 진언한 것이다. 그만큼 문화적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대봉암 : 일본에서 가장 좋은 차가 나온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우지시가 직접 운영하는 다실이다. 평등원 봉황당과 마주하고 있다는 뜻에서 대봉암이라 지었단다.
노포 : 시니세
우토로 마을의 기구한 60년(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교토의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 1800명은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빈터에서 ‘조선인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다.)
고시라카와 법황이 죽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자신의 세력 기반이 있는 가마쿠라에 막부를 차리고 세습 쇼군이 되었다. 가마쿠라는 도쿄 남쪽에 있는 도시다. 이리하여 헤이안시대는 막을 내리고 가마쿠라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유행승, 공야스님(우리의 원효대사처럼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거리의 성인’이라 칭송받았으며, 동대사의 권진승이었던 행기 스님처럼 민중구제 능력이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통상 여섯 가지 바라밀로 깨달음의 과정을 강조하여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등을 육바라밀이라고 한다.
운경과 담경 : 육바라밀사 보물관에는 좌상이 있다. 생생한 얼굴 표정은 사실주의 조각을 능가한다.
삼십삼간당, 청수사, 금각사와 함께 교토 관광에 빅3이다.
동복사 : 가마쿠라시대부터 시작된 일본 선종 사찰은 7당 가람 체제를 이루고 있다. 칠당이란 삼문, 법당, 방장(주지스님 방), 고리(종무소), 선당(선방), 동사(변소), 욕실 등 7개의 건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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