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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을 읽었으니 나름에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사무실에 나왔다. 토요일 아침은 정말 조용하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늦은 아침에는 가끔 직원들이 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에 토요일 아침은 조용하다. 상암시절 보다 회사가 가깝고 편하다. 재밌는건 회사에서 머무는 시간이 상암 시절 보다 훨씬 늘었다는 거다. 일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에서 운동하고 가끔 이렇게 읽은 책들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무실에 있게 된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여름은 오후 12시 쯤 되면 사무실도 더워져서 나갈 수 밖에 없다. 지난 이십년 전에는 사무실 가는게 그렇게도 싫었는데, 혼자 씩 웃음이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숱하게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작가에 글도 잠시 떠올랐다. 윤구병 작가에 신문 사설을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난다. 책을 짚어들땐 글 내용에 노동에 고단함과 불편함만 들어 있으면 어쩌나 잠시 걱정도 했다. 기우일뿐 책에 내용들은 내가 직접 버스를 몰고 전주시내를 돌아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아메리카노 한잔이 최대에 사치라며 혼자 마신게 못내 미안해 동료 버스기사에게 저녁을 사준 글을 뭉클했다.

 

버스 기사님에게 행선지를 묻는 건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빠듯한 배차시간과 버스내 소음은 기사들을 예민하게 만든다. 타인과 공유하는 실내 어디서든 전화 통화는 상대를 자극한다. 기사에 다양한 애환을 알 수 되었다.

 

편집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자뿐 아니라 추천사를 쓴 두 사람도 같은 종류의 노동을 했다. 홍세화는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했고, 나는 서울에서 대리운전을 했다. 허혁은 전주에서 버스운전을 한다. 말하자면 모두 운수업 종사 경험이 있는 셈이다.

(추천사에서 발췌했다. 놀랍지 않은가! 추천하신 두분에 책은 모두 읽었다)

 

행선지를 묻는데 기사가 아무 대답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앞문을 닫고 그냥 가버리더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류장 상황이 매번 긴박하고 운행을 하다 보면 기사가 화가 쌓여 있어 입이 잘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기사는 더치페이의 달인이다. 빠듯한 수입이라 오직 자신이 쓰지 않음으로써 가정을 건사할 수 있다.

자울자울 : 조는 모양을 일컫는 전남 방언

 

노조 결성 후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신입기사에게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나는 당시 투쟁 현장에 없었음에도 지금 그 열매를 같이 나누고 있다. 자연 세월에 좀 그슬려야 같은 동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주 인용하는 내용이지만 임진왜란때 일어났던 의병이 병자호란때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왜일까? 조선 임금 선조가 임란후 각 지역에 유명 의병장을 역모죄로 체포해서 고문을 가하고 반역죄를 뒤짚어 씌어 처형한 일들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호란때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은 어느샌가 어느 누구도 지부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편하게 적고 싶어도 내부에 일이라 쉽게 쓸 수 없다. 페허에서 다시 쌓아 올리는 MBC 노조가 있고 해직 기자들과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투쟁한 YTN 노조도 있었다. 영진위 노동조합에서 힘든 시절을 보낸 당시 지부도 새롭게 경영진에 발탁되어 회사를 이끌고 있다. 노동조합 출신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물론 그들에 노동조합은 연속성을 갖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안 나오는게 아니라 지부가 만들어 질 수 없는 토양이 만들어진게 대단히 아쉽다. 제도와 사람은 그렇게 적응하는 것이다. 리처든 도킨스에 <이기적 유전자>를 참조하시면 좋겠다)

 

여보, 오늘은 별일 없었어?

(오빠! 오늘 회사에서 별일 없었어? 이건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묻는 질문이다. 나도 아내 회사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오늘가서 물어 봐야겠다. 회사에서 별다른 일은 없었어?)

 

( ‘노동과 자발적 가난만이 너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은 다소 감상적이다. 글쎄 사람들에 주관은 누구나 다를 수 있으니까)

 

예술은 쉽다. 그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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