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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시점이 적정했다. 미중일러에 복잡한 틈 바구니 안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늘 우린 고민한다. 투키디데스의 '밀로스'의 예처럼 주변 인식이 부족한 약소국의 입장은 국가자체의 존망을 위협한다. 핀란드는 소련과 '겨울전쟁'으로 인구에 상당부분을 잃으며 겨우 독립을 지켜냈다. 그때 주변 우방은 아무도 핀란드를 돕지 않았다. 핀란드는 강력한 국방과 친러외교를 통해 현재까지 독립을 지켜내고 있다. 한일합방 당시에도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우방은 없었다. 자강이 얼마나 중요한 대목인지 알 수 있다.

버르장머리 없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가한지 한달이 넘어간다. 2차대전 종전시점에서 핵을 두들겨 맞은 일본은 또다른 전범국가인 독일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독일은 주변에 8개 국가와 국경을 맞댄 지리적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바다에 둘러쌓여 지리적 위협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태도가 불량한 것이리라. 피해자 코스프레는 기본이고 피해를 가한 한국, 중국, 동아시아에 대한 반성은 없고 여전히 뻣뻣하다. 이 시점에서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동시에 내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본문중에서)

일본이 1854년 페리제독에게 개항을 한 이후 조선 강화도에 똑같은 방법으로 개항을 요구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본 해군전력에서 가장 우수한 함대를 강화도로 몰고 왔다. 한줌도 안되는 해군전력에 조선이 밀렸다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은 정말 간발에 차이로 일본이 앞서나간 결과물이다. 우리가 현대화된 함대를 단 몇 년만 먼저 보유했어도 입장이 바뀌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 조선 내부 사정은 내부 수탈경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조선제국이 일본 열도를 집어삼키고 식민지로 삼고 발판삼아 근대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압력을 받으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정직하고 자세하게 조사해야 한다.

'위기'란 무엇인가?  crisis는 krisis와 동사 krino에서 파생했다. 위기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전환점은 일종의 시험대를 뜻한다.

저자는 이 책이 수십년간 읽히기를 희망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뤄진 7개 국가는 나름에 평균이 존재한단 얘기다. 평균을 지금이든 수십년후든 곱해보면 될 일이다. 이런 책은 읽어줘야 한다. 살면서 혜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의 위기 - 궤적 - 위기의 처리 - 결과와 관련한 요인 - 국가의 위기

아버지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였으며 어머니는 언어학자로 교사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개인은 하나의 국가 문화를 공유하며 국가의 결정은 궁극적으로....칠레, 인도네시아, 독일이 지도자의 견해를 중요시했다.

'파시키비-케코넨 원칙'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본 과제는 핀란드의 지정학적 환경을 지배하는 이해관계에 핀란드의 실존을 맞추는 것이다. 핀란드의 외교정책은 예방 외교이다. 핀란드는 노동인구는 적지만 한결같이 고임금을 기대하는 노동자이다. 전 국민을 생산적을 활용하기 위해 핀란드의 교육제도는 모두를 잘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인구는 600만명이다.

위기 해결을 위해 핀란드가 보여준 것은 책임의 수용(요인2), 울타리 세우기(요인3), 강력한 국가 정체성(요인6), 정직한 자기평가(요인7), 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요인9), 유연성(요인10), 국가의 핵심가치(요인11)이다.
핀란드가 독립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경제적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소련의 신뢰를 얻는 것이란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지리적 위치를 분석해보면 일본과 영국은 면적과 고립의 정도에서 비슷하지만 대륙에서 떨어진 거리는 일본이 영국보다 5배 멀다. 면적은 일본이 1.5배 넓고 땅은 비옥하다. 그래서 인구는 영국에 비해 2배 많다. 일본은 군사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항복 선언에는 최고 통치자로서 황제의 대권을 침해하는 어떤 요구도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끝까지 고집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일본은 전선을 맞댄 적이 없다.

칠레는 강력한 민주주의 전통을 지진 국가였다. 그런 국가가 어떻게 급작스레 방향을 뒤집었고, 그런 급작스런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1970년 선거에서 아옌데는 36%를 얻었지만 과반에 못 미치는 최다득표에 불과했다. 결국 아옌데는 의회에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1962년 쿠바에 건설 중이던 소련 핵미사일기지는 미국과 칠레의 우익, 중도 및 군부가 칠레에 마르크스주의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아옌대 대통령의 공공연한 목표를 무산시키겠다고 단호히 결정한 이유였다.

1973년부터 76년까지 피노체트 정부는 13만명, 칠레 국민의 1%를 체포했다. 피노체트 독재 정권은 좌익의 씨를 말리는 동시에 정부의 포괄적 개입아라는 과거의 규범을 뒤짚고 자유 시장의 원칙아래 칠레 경제를 개편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경제는 계속 위축되었고 인플레이션은 지속되었으며 실업률은 치솟았다.
콘세르타시온 : 좌파 중도우파 연합(1990, 93, 2000, 06년) 선거에서 승리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인구수가 2억 6천만명으로 중국과 인도와 미국만이 인도네시아를 앞선다. 또 대부분이 무슬림이어서 무슬림 인구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이란보다 더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5500킬로미터에 흩어져 있는 조각조각 국가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언어만 700개가 넘는다.(수카르노 ->수하르토)

수하르토의 나쁜 유산은 50만명을 학살하고 10년동안 10만명을 감옥에 보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국민의 불만을 해결하기보단 무력을 사용해 국민을 학살해야 성공을 확실히 보장받는다는 교훈을 끌어냈다.

인도네시아는 핀란드의 정반대편에 있었고 칠레는 중간쯤이었다. 핀란드는 내전 후에 신속히 화해했고, 칠레의 경우에는 많은 공개적 토론과 가해자에 대한 심판이 있었지만 불완전한 화해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토론과 화해가 무척 제한적이었고 심판도 없었다.
(현재까지 내용을 보면 인도네시아에 콘텐츠 판매는 쉽지 않아보인다. 그들의 검열도 심할 것 같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아이돌을 무기로 한 콘텐츠 수출은 기회가 있어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군부가 젊은이들에 불만을 해소해야 하는데 음주가무 만큼 적절한 방법은 없다.)

인도네시아는 광활한 영토를 자랑스러워 한다. '사방부터 메리우케까지'라는 가사가 있을 정도다. 인도네시아의 또 하나의 근원은 바하사 인도네시아어이다. 배우기 쉽고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국어로 신속히 채택하며 700개의 지방어와 공존하고 있다.

미국은 서독에 경제원조를 퍼부었지만, 소련은 동독에 경제적 배상을 요구하며 공장을 통째로 해체해 러시아로 옮겨갔고 동독 농업을 '집단 농장'으로 재조직했다.

현재의 독일 지도를 보면 자주성을 제한하는 제약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공화국, 폴란드, 덴마크)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마주 보고 있다.

독일은 빌헬름2세와 히틀러가 있었다. 1차세계 대전에서 독일은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내분에 의한 전쟁 패배라고 생각했고 히틀러는 그 지점을 정확이 짚어 공격했다. 2차 세계대전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점령되었다. 그리고 브랜트 총리에 폴란드에서의 사과는 적국이었던 이웃 나라들을 우호적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독일은 68혁명 세대들이 성장해 90년 통일 독일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거기에는 소련에 붕괴도 한몫을 했다.

호주는 영연방에 일부였다. 모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했는지 영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전해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싱가포르 전투에서도 많은 사상자와 포로가 되었고 터키와의 전쟁에도 동원되어 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랬던 그들은 영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로운 질서에 영국은 자국에 이익을 챙기기에도 바빴다. 호주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그들을 외국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백호주의가 심했던 이유도 영국을 모국으로 뒀던 이유였다. 지금은 다양한 이민을 받고 있다.

호주는 페리제독이 1853년 7월8일 일본에 입항하며 메이지 일본에 던진 충격, 1939년11월30일 핀란드를 위기에 빠뜨린 소련의 침략, 1973년 9월11일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아옌데의 죽음으로 위기에 빠진 칠레, 1965년 10월1일 쿠데타의 실패와 그에 따른 대량 학살이 자행된 인도네시아의 경우에 비견할 만한 충격이 없었다.

호주의 아시아 이민자는 급격히 늘고 있다. 국회의원 정원에 15%를 20년 이내에 채울 것 같고 곧 아시아계 총리를 선출할 것이다. 그들은 영국여왕을 버리고 공화국으로 변신할 것이다. 수십년내에.

일본은 첫째 변화된 환경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전통적 핵심 가치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과 당시의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않고, 자기연민에 초점을 맞추며 일본을 피해국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개선하고 싶다면 독일의 선례를 따라 자금의 책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자기평가가 부족한것도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장점은 230년 동안 중단 없는 민주주의를 통치 원리로 삼았다. 반면 중국은 2,240년 동안 중단없는 비민주적 독제정치를 계속 해왔다. 민주주의의 실질적 이점은 무엇인가? 시민은 실질적으로 어떤 의견이든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다. 그 의견이 처음에는 현 정부의 뜻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토론과 반론 과정에서 최선의 정책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독재국가에서 그런 의견은 토론 대상조차 되지 않을 것이고, 그 의견의 장점 또한 채택되지 않을 것이다.

이민의 근본 이점은 젊고 건강하며 대담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근면하고 야심 차면서 혁신적인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경제, 사회에 역동성 불어넣는다.(한국 사회는 이민자들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먼저 재외동포인 탈북민과 조선족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가. 시작은 여기부터다. 이것부터 극복하면 우리도 다인종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현실은 내가 영향을 주고 지배하지만 미래는 내것이 아니다. 내것인양 마음대로 판을 주무르는 못된 심보들은 어디서 나오는지. 본인들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닐텐데 무슨 걱정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미국은 노벨상 수상자에 1/3이 이민자들이다.

최근 미국 의회에 타협이 줄고 있는 이유는 '게리맨더링'과 관계가 있다. 게리맨더링은 어떤 정당을 선택하는 유권자의 비율보다 더 많은 의원을 당선시킬 목적에서 그 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재조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실제로 18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후보자를 더 많이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구를 재획정했다.

미국인구 3억3000만명, 미국이 많은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 주된 이유는 드넓은 비옥한 토지 때문이다. 면적이 미국보다 넓은 2개국, 러시아와 캐나다는 영토의 많은 부분이 주거지가 드문드문하고 농사에 부적합한 북극권에 있어 인구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자원이 부족해서 식량과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면적은 미국의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인구밀도는 미국의 10배 이상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일본보다 많은 인구를 부담하기가 훨씬 더 쉽다.

독일은 인정했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향후 동북아 역사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에 발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수 십년내에 일어나든 아니면 수 세기가 지난 후에 진행되든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이다.

핀란드는 소련과 맞선 겨울전쟁에서 우방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때 겪은 잔혹한 경험이 1945년 이후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독립성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소련과 실용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정직한 자기평가에는 두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개인이나 국가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물론 정확히 알기가 힘들 수 있다.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부정적이란 도덕적 해이보다 정보 부족 때문이다.(이래서 깨어있어야 한다. 예민하게 촉을 세우는 것이 아닌 정직한 정보에 공식적 유통이 필요하다. 그래야 오판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그렇게 알아낸 것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국가나 인간의 속성을 그런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기만이 인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일본이 경우 황제를 향한 존경이란 핵심 가치는 지금도 일본의 강점이지만 일본은 해외 자연 자원에 대한 무제한적 활용이란 과거의 정책을 고수하며 손해를 자초하고 있다.

ICBM 등 군사적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과거의 지정학적 제약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럼 지리적 조건이 이제는 완전히 의미가 없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핀란드의 해외 정책은 여전히 러시아와 맞댄 국경에 영향을 받는다. 독일의 해외 정책도 육지에서 국경을 맞댄 아홉 국가, 발트해와 북해를 사이에 둔 다른 여덟 국가의 영향을 받는다.

위기는 필요한가? 개인적 위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12가지 요인은 국가의 위기에 얼마나 적용되는가.
역사의 흐름은 위대한 지도자의 정책이나 결정보다 많은 세부 항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견해가 요즘의 역사학계에서는 대세를 이룬다. 민주적인 지도자보다 독재자의 죽음이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이건 당연한 결과다.)

유럽 국가 둘, 아시아 국가 둘, 남북 아메리카에서 각각 하나,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투키디데스의 '밀로스의 대화'는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와 약자인 내 힘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건 멸망을 자초할 수 있다.

위기는 과거에도 국가를 곤경에 빠뜨렸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대 국가와 현 세계는 앞으로 위기에 대응하려고 어둠 속에서 헤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거에 효과를 발휘한 변화와 그렇지 않았던 변화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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