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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기와 죽기
나이를 먹으니까 나 자신이 풀어져서 세상 속으로 흘러든다. 이 와해를 괴로움이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서 온전히 늙어간가. 새로운 세상을 겨우 찾아낸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70대 노인의 마음이 이런걸까. 어느나라 왕이 삶에 대해 정리해오라고 신하에게 명했다. 처음에는 한권으로 그리곤 한장으로 그리곤 네글자로 정리했다. 생로병사)

신혼의 신부가 남편 없는 한세상을 홀로 늙고, 그리고 죽어서, 젊어서 죽은 육군 중사 남편과 합장된 비석도 있다. 묘역은 지대가 야트막하고 앞이 터져 있어서, 눈의 위치를 낮추면 비석들과 강 건너 용산구 쪽 빌딩숲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석들은 대도시의 한복판에 포개진다. 모역의 둘레길에서 단풍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가 나뭇잎을 떨구고, 잘 가꾸어진 숲속에서 젊은 부부가 데리고 온 아이들이 뛰논다. 평화는 무수한 죽음들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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