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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3B><어디서 것인가>유현준

 

오늘 둘째아들 예찬이에 손목이 부러졌다. 축구공을 맞아 부러졌는데 공이 꽤나 세게 날라온 같다. 아들에 전화를 받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한전 농구장에서 조우했다. 아들을 데리고 나주시내 응급실로 급하게 이동했다. 도중에 걱정하는 엄마와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선지 아픈중에도 농담을 건네는 아들을 보면서 누굴 닮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역시나 뼈가 부러졌다. 급하게 깁스는 했지만 올해안에는 풀기 어려워 보인다. 엄마와 장난치는 보니 그만하니 다행이다.

 

지난 7월에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읽었다. 그때 읽은 구절중 벽은 사람의 키를 기준으로 용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어디서 것인가?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연결을 위한 곳인가 아니면 밖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집인가. 지금은 레고 블록을 세워놓은 듯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싶다. 늙기전에 이루고 싶다. 내가 만든 집에 내가 담아내는 바라보길 희망한다.

 

(본문중에서)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인간이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자 의식을 치르기 위해 괴베클리 테페 같은 신전을 건축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종교적 신화를 공통으로 믿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설명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터키에 위치한다. 스톤헨지보다 7000년을 앞서는 고고학 가치를 지닌다)

 

로마의 상수도, 파리의 하수도, 뉴욕의 엘리베이터는 이들 도시가 대도시가 되는 바탕이 되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길이 사라졌고, 스마트폰에 출현으로 대화가 줄어들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단면이 그렇다. 누군가 극단적인 서향을 띠면 중간층의 사람들은 눈치를 보게 된다. 인터넷상의 댓글은 상호 대화라기보다는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뱉고 도망치는 것과 같다.

 

SNS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사회적 건설에는 비효율적이다.(토머스 프리드먼<늦어서 고마워>)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동안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학교는 반드시 저층으로 지어서 햇빛이 있는 운동장에 나서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 교무실은 제일 윗층으로 보내거나 빈교실에 부숴 테라스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햇빛을 있다.

 

똑같은 공간에서 12년을 지내는 아이들이 정상적인 인격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우리 아이들이 같은 친구를 왕따시키고, 폭력적으로 바뀌는 것은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비슷해서다. 발자국만 옮겨도 변화하는 마을 같은 풍경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나게 주어야 한다.(회사 내부를 보면 공간 활용 구분이 없이 부족하다. 오픈된 공간에 있지만 전혀 공유되지도 소통하지는 않는 이상한 구조, 정을 붙일 없는 . SNS 이외에는 소통조차 되지 않는 . 어느새인가 이렇게 되버렸다.)

 

서부 캘리포니아는 지진으로 인해 대부분 저층으로 이뤄진다. 그래선지 친구는 많아지고, 배나 많은 생각의 시너지 효과가 나올 있었던 것이 아닐까.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3미터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학교 담장을 없애고 학교 주변에 문방구, 카페, 야채 가게 같은 상점을 배치해서 지역 주민들이 학교를 쳐다볼 있게 주면 안전한 학교가 것이다. 평등과 전체주의는 종이 차이다.

 

실내공간은 풍요로워졌지만 실제로는 학교가 점점 교도소와 비슷해졌다. 해남 땅끝 마을까지 이야기가 닿아서 많은 사람이 학교 건축의 문제점에 공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학교와 마을은 하나에 공간으로 놓고 도시기획을 하는 날이 와야 한다. 지문처럼 학교 건물은 교육청에서 디자인하고 도시는 지자체에 맡긴 다면 생각이 이어지기 힘들다.)

 

도시 내에서 소유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머무를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심 속에는 정주할 공간이 없어서다.

 

지붕이 있는 공간을 소유하지 못하니 모자를 쓰고, 후드를 뒤집어쓴다.

 

사람이 어떤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려면 거리의 이벤트 밀도가 높아야 한다. 이벤트 밀도란 1 미터를 걸어가면서 내가 선택해서 들어갈 있는 가게 입구의 숫자다.

 

현대사회의 공간적 특징은 변화하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있다.

 

백종원씨는 이제 요리사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업자다. 그의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들어가는 지역은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고 당값이 올라간다. 하지만 이런 식당들도 많이 사라질 것이다. 배달의 민족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배달 앱은 우리나라 도시의 풍경을 바꿀 것이다.(1층에 굳이 재미난 가게를 만들 이유가 없다. 이렇게 된다면 커뮤니티를 만들어갈 공간은 점점 설자리가 줄어든다)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5층짜리 상가를 분해해서 거리에 길게 늘어선 단층짜리 연도형 가게를 배치해야 한다.(요즘 서울의 핫플에스는 골목길이다)

 

뉴욕의 블록의 크기는 가로 250미터, 세로60미터다. 강남은 가로 800미터, 세로 800미터고 로마의 경우 가로 80미터, 세로70미터다. 우선 로마가 만들어진 시대는 주로 걸어 다니던 시대다. 시속 4킬로미터로 로마의 블록인 80미터를 걸으면 72초가 소요된다. 뉴욕을 마차(시속20킬로) 타고 45초가 걸린다. 서울 강남은 자동차(시속60킬로) 타고 48초가 걸린다. 블록의 크기는 대체로 1 내외에 시간 거리다. 우리의 도시는 이렇게 교통수단에 맞춰 만들어졌다. 우리의 골목길은 로마의 골목길보다 밀도가 배나 높은 풍경의 변화가 있는 길이다. 골목길은 사람이 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익숙한 크기오 길이로 나누어진 사람 중심의 길이다.

 

이언모리스<가치관의 탄생> 에너지를 취하는 경제 시스템에 따라 가치관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업사이클은 (up) 리사이클(recycling) 합성어로 높은 의미와 가치를 가지도록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고인돌은 전쟁을 예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무거운 돌을 이용한 거석문화는 권력의 상징이다. 영국의 스톤헨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 건축된 것이다.

 

이처럼 무거운 건축물은 권력을 과시하는 장치다. 반대로 가벼운 건축물은 아무런 권력을 보여 주지 못한다. 몽골제국의 텐트는 가볍다. 그래서 텐트는 아무런 권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바벨탑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지어졌던 지구라트 신전을 말하는데, 실제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는 벽돌 구조체가 발견되고 있다.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모아이 석상 열심히 만들다가 삼림을 모두 훼손했다. 결국 멸망했다. 과유불급이다.)

실제로 두바이는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완공과 동시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도 했다.

 

에르메스는 색깔이 워낙에 독특해서 쉽게 들고 다니기 어렵다. 그에 비해 루이비통은 검정색과 밤색 계열이 많아 효용성이 크다. 에르메스백은 명품계의 원자폭탄이다. 이런 백을 들고 동창회에 나가면 동창회가 초토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느낄 있는 점은 과시를 하려면 쓸데없는 돈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귀금속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과시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과시를 하는가? 가젤의 경우에서 있듯이 불안한 자들이 과시를 한다.

mgh = 1/2 X mv²

 

위치에너지는 질량 × 9.8(중력가속도) × 높이. 고인돌은 10 정도 되는 커다란 바위가 3미터가량 높이에 올려져 있는 형태다. 10 × 9.8 × 3미터 = 294,000 된다.

따라서, 모든 건축물은 위치 에너지 결정체다.

 

피라미드 모양을 컴퓨터로 리모델링하고 4미터마다 부피를 잘랐다. 4미터로 나눠진 높이에 부피를 곱한후 총합을 구했다. 이때 중력 9.8 상수는 삭제했다. 이러면 대략 9,400 정도다. 값을 기준으로 1 놓고 다른 문화권에 건축물과 비교했다. 스톤헨지는 0.003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 신전은 0.006이다. 피라미드는 기준점이므로 1이고 만리장성은 2.3이다. 이는 진시황제가 파라오보다 2.3 세다는 얘기다. 정도가 농업에 기초를 권력에 최대치일 것이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은 7.4 부르즈 할리파는 3 롯데타워는 2.6 삼성동 현대차는 8.9 흥미로운 것은 롯데와 현대에 차이는 3.4배다. 그룹에 주가총액은 롯데는 29.42 현대는 100.21이다. 둘은 3.4 차이가 난다. 위치에너지 값과 거의 동일하게 3.4 차이 나는 것을 확인 있다.

건축가들 중에 유독 가분수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과시욕이 사람이다.

 

유대교는 일체의 형상 조각을 우상 숭배라고 하여 금한다. 대신 텍스트로 계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유대인이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건축을 없는 상황에서 기인한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불교에서 부처님은 구체적 모습이 없었다. 과거에는 빈의자만이 부처를 형상화 했는데 헬레니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오늘날이 부처상이 생겼다.)

 

역사를 보면 오래된 종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종교지만 전파된 종교는 유대인과 이슬람 같은 유목 민족의 종교다. 유목 민족은 운반가능한 소프트웨어에 집중했다. 텍스트인 경전은 종교의 전파에 효율적인 미디어다.

 

2015 조사결과 개신교20퍼센트, 불교 16퍼센트, 천주교8퍼센트를 이루고 있다.

 

남녀가 함께 있을 있는 . 당시 교회는 가장 진보적인 공간이었다. 반면 절은 멀리 산에 있어 가기도 어렵고, 이성 교제를 꿈꿀 장소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런 건축적 배경 속에서 종교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이성 교제는 자유로우며 문화는 개방되었다. 이제 교회는 가장 보수적인 공간이 되었다. 현시대는 종교인들의 자리를 심리학자, 뇌과학자, 인문학자가 대체하고 있다.(이건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지금의 종교는 현시대에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진부한 언어에 나열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보면 철학자 강신주와 알쓸신잡과 같은 프로그램이 빛을 보는건 당연한 일이다. 열심히 읽어 전파하자)

 

지구라트에서는 가장 높은 곳의 정점에 제사장이 위치해서 주변의 모든 사람이 올려다 보게 만들었다. 반면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시선 집중을 받는 무대가 객석보다 아래에 위치한다. 이로써 객석과 무대에 있는 사람 사이의 균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평등한 권력의 공간 구조를 제공하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그리스 민주주의 사회를 완성시켰다고 있다.

 

포드의 소꿉친구인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은 자전거에 내연기관을 설치한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 만들었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센트럴파크 동쪽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영국에서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에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만드는 일도 생겨났다. 채광과 통풍이 되어 위생이 나빠지고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복층유리가 나와서 단열이 크게 향상되었다.

 

차도가 3차선 이하인 경우에는 보행자의 흐름이 이어지지만 4차선보다 넓으면 단절된다는 것이다. 좋은 예가 홍대 앞이다.

3차선 이하의 도로가 블록 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차선 도로는 무단 횡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단 횡단이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건너편을 그냥 건나갈 만큼 가깝게 느낀다는 것을 뜻한다.

 

삼거리의 경우 사거리보다 시선상으로 2개의 길이 눈에 들어와서 머물고 싶어지는 길이 된다.

(그러고 보면 사거리에서는 옆으로는 차를 봐야하고 앞으로는 목적지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삼거리는 목적지와 갈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업적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한강르네상스 계획안에는 보행자 전용 한강다리가 있었지만 전임 시장의 계획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서울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대한민국에 국민이다. 국민에 이익에 반하는 정치적 이해로 일을 바라보는 것을 혐오하고 배격한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는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1953 왓슨과 크릭이 밝혀낸 dna 생명의 설계도가 이중나선형 구조에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구성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개념이다.

 

집카(zipcar) 공동 대쵸 로빈 체이스에 의하면 자동차를 내가 사용하지 않을 다른 사람이 있도록 주면 현재에 30% 줄고 카풀을 하면 10%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독일과 미국은 자동차와 고속도로를 많이 갖고 있다. 길과 국력은 분명 연과되어 있다.)

 

뇌과학자 이대열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전까지 아궁이와 구들장이 합쳐진 상태로 지내다 60년이후 석유곤로가 나오면서 취사가 난방에서 분리됐다. 보일러에 도입으로 2층에도 집을 지을 있게 됐다.

 

온돌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은 유럽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수백 앞서서 고층 주거가 보급되었고 도시화가 정착되었다. 19세기 한양은 단층 건물로 이뤄져 있다. 상인을 중심으로 신흥계급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보일러 덕분에 12 이상에 건물을 지을 있었고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 있었다.

프랭크로이드 라이트 낙수장 / 빌라 사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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