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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속도는 과거만 못한데 판단력은 점점 나아진다.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 하고 싶은 것들을 잊지않고 하자. 아직 내게는 25년의  건강한 시간이 남아있다. 지나온 시간을 남은 삶을 지탱하고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난 아직 유럽에 발조차 디뎌보지 못했다. 90년대 초 유럽 배낭여행은 당시 20대에 문화코드였다. 그 시절엔 돈이 없었고 지금은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는 퇴직후 유럽여행을 꿈꾼다. 그때쯤이면 내게도 제대로 된 여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유럽지도를 복사해서 한쪽에 붙여놓고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회사에서 지도만 복사해서 가져올걸 괜한 후회가 든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그런데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서로 인연이 있다. 그리스와 터키는 20세기 들어 한판 붙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쇠락해서 터키로 쪼그라들때 그리스가 영토를 넓히겠다고 선빵을 날렸다. 그러나 늙은 사자에게 한방 처맞고 게임 끝. 그렇다 이럴 때 타이슨에 얘기가 떠오른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전까지는'

올해 들어 가까운 일가중 두분이나 세상을 떠나셨다.  초여름과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환절기였다. 살아 있는 자들은 생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남은 삶도 아껴가며 촘촘하게 살아야겠다.  갑작스런 할머니 사후를 정리하는 것보다 인간사를 정리하는 것이 번잡했다. 장시간 운전하느라 여독이 쌓인 탓도 있을 것이고 갑작스럽게 못보던 얼굴들을 만나는 낯섬도 있었다. 죽음은 삶을 마감하고 또다른 여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행과 죽음은 그렇게 맞닿아 있는게 아닐까.

(본문중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가 마케도니아 원정군에 후손이란 건 이번에 알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여성 지배자의 호칭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 하나 말고는 민주주의라고 할만한 요소가 없었다. 인권, 개인의 자유, 만인의 평등 같은 기초적 원리가 정립되지도 않았고 권력의 분산과 상호 견제 장치도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런 정치제도가 다수의 폭정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난민 소녀 아스파시아는 이혼남 페리클래스의 연이이 되어 공공장소에 나타났다. 아스파시아는 똑똑하고 말도 잘했으며 당대의 지식인과 널리 교류했다. 아스파시아 말고는 소크라테스가 '덕이 있는 여자'라고 말한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아테네의 변명>(베터니 휴즈 지음, 도서출판 옥당 2012년)
어젯밤에 갑작기 떠올랐는데 <종교의 발견>이었나 그책을 읽어봐야 겠다.

도시국가 아테네가 인류에게 남겨준 가장 귀중한 유산은 플라카에서 만들어졌다.
소피스트가 논술 학원의 인기 강사였다면 소크라테스는 거리의 철학자였다.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독 당근즙을 마셨다. 그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던 것은 가짜뉴스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뿐이다. '폴리스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내린 결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옳은가? 모두가 그렇게 할 경우 폴리스가 존속할 수 있는가'

그리스는 재정적자가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갚으려는 국민들의 의지가 부족해보인다. 똑같이 구제금융을 받은 한국과는 너무나 다르다.

고대 유적 구경은 콜로세오에서 시작했다. 아테네의 슈퍼스타가 파르테논이라면 로마의 슈퍼스타는 콜로세오다.

로마의 부는 거의 전부 약탈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부를 약탈하고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로마의 패권은 아테네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로마군단은 방패와 창과 양날 단검으로 무장한 100명 단위의 백인대, 백인대 여섯을 모은 대대, 10개 대대를 유기적으로 편재한 군단을 핵심 전력으로 삼고 투석병과 보급병 등 지원부대를 결합한 구조였는데 백인대장은 노련한 병사가, 대대장은 선출 지휘관이, 군단장은 전직 고위급 정치인이 맡았다. 전성기에 25개 군단 30만명이나 되었던 군인들은 월급을 받으면서 20년 정도 복무했고 제대할 때는 퇴직금을 받았다.

카이사르는 자신감이 지나쳤던 나머지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서도 정적을 숙청하지 않았고, 그 관대함 때문에 암살의 비극을 불러들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로스의 장군 프롤레마이오스가 북아프리카에 세운 국가의 지배자였다. 이 나라에서는 남자 왕을 프롤레마이오스, 여자 왕을 클레오파트라라고 했다.

판테온 근처 젤라또는 어딜가도 맛있다. 젤라또 카페 주변을 서성이면서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로마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미련한 행동이라고 본다.

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가리발디만큼 많은 일을 한 사례는 흔치 않다. 이탈리아 건국 역사를 대충이라도 알면 로마 여행은 재밌다. 에마누엘라 2세 기념관은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돈되는 게으름, 가습제 옥시와 관련한 얘기를 아내와 나눴다. 그 시절 첫째 아이가 어릴적 우리도 그 가습기를 사용했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습제를 넣는 것을 귀챦아 했던 덕에 아내와 지용이가 무사할 수 있었다. 돈되는 게으름 정도가 아니라 목숨까지 구한 게으름이라 할 수 있겠다.

 종교는 믿는 자에게는 진리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헛소리이며 권력자에게는 쓸모가 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당, 원, 청 등 중국의 강성한 왕조와 일본이 쳐들어와 일시적으로 지배한 적은 있지만, 어떤 외부세력도 한반도를 항구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했다.

아테네의 민주정을 완성했던 페리클래스는 안에서는 ‘수석시민’으로서 민주적 지도력을 행사했지만, 밖에서는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추구했다. 다른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의 체제를 따르도록 강요했고, 복종하지 않는 도시국가를 침략했으며, 동맹국의 조공을 받아 파르테논 신전과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지었다.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고 민주주의 정체체제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획득한 부덕분이었다. (현재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동맹국의 희생과 끊임없는 적대국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유지된다. 내부 민주주의는 공정하고 자유롭게 외부에서는 그들에게 동조하거나 복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기력을 탕진하는 동안 발칸반도 북쪽의 경계 지역에 있었던 마케도니아왕국이 힘을 키워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유럽 국가들이 기력을 탕진하는 사이에 세계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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