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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광탄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광동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외박을 나온 군인들은 내무반에 갖다줄 순대와 떡볶이 그리고 사제담배를 산후에 불광동 터미널 근처 터미널 다방으로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앳된 스물한두살에 불과한 군인들은 1박2일간 있었던 일들을 과장하며 여기저기서 키득거렸다. 그리고 6시에 출발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7시30분에 광탄면 마장리에 도착해서 열을 맞춰 부대로 들어갔다. 이게 90년대 초반에 군생활을 했던 내 모습에 일부다. 작계훈련을 할때면 언제나 마장리에서 출발해 용주골을 거쳐 1사단 사단사령부를 거쳐 봉일천을 지나 거점으로 전개했다. 1달에 한번씩은 행군했던 경로였는데 '노명우' 작가에 글을 통해 옛기억을 새롭게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삶에 터전이었고 유년시절부터 유학을 가기전까지 인생에 꽤나 많은 부분들이 녹아있던 곳이라면 누군가에게는 고생에 기억을 잔뜩 품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 경우는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을때와 <인생극장>에 톤은 사뭇다르다. 전자가 철학적 가치와 사회적 담론을 함께 담아낸 책이라면 후자는 삼거리에 위치한 '레인보우클럽' 에서 '무지게 다방'으로 이어지는 전후를 치열하게 살아낸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한 이야기다.

 

나 역시 책에 취지를 공감했다. 전후 한 시대를 고생스럽게 살아낸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분들에 이야기가 어디에도 남지 못하고 흩어져 버리는 것이 맞는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부모세대에 이야기를 어딘가에 남겨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을 이미 오래전부터 나 역시 하고 있었다. 그것들에 대한 공감과 형식이 이책에 담겨있다.

 

'노명우' 작가에 접근은 당대에 유행한 수많은 영화들을 쫒는 것부터 시작했다. 영화 줄거리를  통해 시대를 이해하고 갈등을 유추해냈다.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났으니 어머니에게 남은 인생극장의 배역은 누군가의 '아내', 또 누군가의 '엄마'뿐이었다.(168P)

 

서울 창신동은 내 아내가 어린시절을 살던 곳이다. 그곳에 채석장이 있었고 거기서 파낸 돌들로 서울 지역에 이름난 집들을 지었다는 것도 책을 통해 알았다.

 

선글라스를 낀 군인이 워커힐 호텔을 편하게 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청계고가 탄생설화도 재밌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란 영화를 통해 제국적 헤게모니에서 주체가 될 수 없었던 남성들은 양색시를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클럽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손상당한 남성성을 회복하려 했다.(314P)

 

지금의 사회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전쟁은 언제나 여성과 노약자들을 힘들게 한다. 전후 남한은 그런 모습이었다.

 

노병욱과 김완숙이라는 자연인은 나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 부모와 자식으로 맺은 인연이니 그 인연은 분명 소중하고 각별할 수밖에 없다. 각별한 사람과 죽음을 통해 이별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이다. 하지만 비극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넋두리가 된다. 생로병사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이지 나에게만 일어나는 비극은 아니니까.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르기에 인생극장의 막이 올랐고, 그 막은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나의 부모가 인생극장의 무대에 올랐다가 퇴장했고, 나는 그 무대를 물려받았다. 무대 장치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부모를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무대 장치 또한 투덜댄다고 바뀌지 아니하니 그것을 원망하며 째려보기보다는 찬찬히 살펴보는 편을 택하는 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 맘에 들지 않는 무대장치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진정한 유산인지도 모른다. 유산이 꼭 '재산'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427P)

 

고인이 떠난 후 삼개월이 지나면 비로서 빈 자리가 확인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진정 전하고 싶었던 말들이 떠오른단다.

역시 살아계실때 잘해야 한다는 평범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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